1. 영어지옥

(7) 고급영어에 대한 환상

반기문 UN 전 사무총장은 영어를 잘할까?

 

 

영어를 공부하다 보면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가고 싶은

욕심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

 

영어에는 어느 정도는 단계가 존재한다.

기초-초급-중급-고급의 순서 정도?

그럼 ‘고급영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일반적으로는, 얼마나 고급어휘를 잘 사용하고,

비유표현이나 멋들어진 표현을 많이 쓰는가를

떠올릴 것이다.

 

이쯤에서 쉽게 떠올리는 대표인물이 바로

반기문 UN 전 사무총장(임기: 2007년 ~ 2016년)이다.

 

EBS 다큐멘터리(“언어발달의 수수께끼” 1부)에서

반기문 사무총장의 영어를 두고

원어민들과 (영어에 익숙하지 않아보이는) 일반인들

각각의 평가가 나온 적이 있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들으셨는지?

 

반기문 사무총장의 영어에 대해

원어민들은 고급스럽고 잘하는 영어라고 반응한 반면,

일반 한국인들은 발음만 듣고는

잘 못하는 영어라고 일축했다.

두 그룹 모두 부분적으로는 맞고,

또 한편으로는 틀린 말이다.

 

[사진] 반기문 UN 전 사무총장: 어찌 됐든 개인적으로 성공하신 분이고, 고생 많이 하셨음 (이미지 출처: YTN)

 

반기문 총장의

입장과 환경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토종 국내파 출신으로서

1970년 외무고시 합격 후

몇 십 년 째 외교업무를 맡아왔다.

 

UN이라는 곳은 영어로 둘러싸인 환경이다.

우리들 중에, 그가 사석에서 캐주얼하게

영어로 말하는 것을 들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주로 공식 멘트를 할 때가 전부라고 봐야 한다.

또한 국제적인 정치무대에서

동료들이나 각국 대사들과

어느 정도의 친분관계는 유지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친구들 편하게 만나는 것 처럼은

아닐 것이다.

사무적인 내용 위주일 것이고

그나마도 말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러운 환경.

그렇다면 많이 쓰는 말은 정해져 있기 마련이다.

 

위 영상에서 일반인들은 발음만 보고

유창성을 가늠했고,

원어민들은 표현의 정교성이나

어휘 수준에 대해서

종합적으로 판단을 내렸다.

 

두 그룹 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는 말은

각자의 기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환경에서의 반기문 영어는

그 자체로 훌륭하다.

수정/보완을 얼마나 거쳤겠는가.

 

그런데 사실

대본 보고 그대로 읽은 것일 뿐이다.

(공식석상에서 보고 읽는 건 오류를 줄이기 위함이라고 치고,

암튼 이건 넘어가자.)

 

영어는 이미 글로벌 언어이고

미국식 발음이 무조건 정석은 아니다.

그의 업력과 입지 기준으로 봤을 때

업무상 영어는 상급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의 단계에서

발음에 치중한 판단도 틀린 것은 아니다.

 

표현의 정교성 보다

유창성이나 능숙함에 대해

본 것이기 때문이다.

 

발음이 좋다고

무조건 영어를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어 고수들 중에서 발음이 형편없는 경우보다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 중에서

그런 사람의 비율이 더 높은 것을 보면

어느 정도는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영어에 노출이 많이 되고

몸에 체화가 되어 있으면

문장을 읽을 때

영어 특유의 억양을 내거나

연음을 적용할 수 밖에 없다.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그러지 않는 편이 오히려 더 불편하다.

 

하지만 반기문 총장의 영어에서는

그런 부분이 발견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아무 관련이 없는

반기문 총장에게 감히 악평을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함이 있지만

독자분들에게 자유로운 판단에 대한

허가를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말해보았다.

 

발음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4장을 참고하기 바란다.

 

이번 섹션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는 고급영어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적어도 우리에게 영어는 욕망의 언어이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굳이 영어를 더 잘하게 보이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나도 인풋 영어를 ‘공부’하던 초반에는

발음 내는 것에 대한 지대한 노력을 했었다.

지나고 생각해 보면

전혀 도움이 안된 것은 아니었지만

겉껍질에 너무 신경을 썼다는 생각이다.

 

잘하는 것 처럼 보이려고 하는 경우 중에

고급어휘를 일부러 더 섞어쓰는 것도 있다.

 

사실 사용 어휘만 고급어휘로 보완해주면

얼마든지 소위 고급영어가 가능해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특정분야의 전문서를 많이 보고,

그 내용으로 토론을 하고

글이나 논문을 쓰면 된다.

 

하지만 개인적인 경험에 비춰봤을 때

영어를 익히는 초기 단계에서부터

고급영어를 목표로 삼으면 위험해진다.

문장의 기본구조와 영어식 사고방식에

익숙해질 기회를 놓치기 쉽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고등학교 시절에

단어 욕심이 많이 있었다.

 

밤에 정말 졸려서 자야 되는데

막 잠이 들려 하기 전에

‘opportunity (기회)’라는 단어 중간에

p가 한 개인지, 중간에 O였나 U였나

헷갈리는 것이었다.

잠은 자야되는데 그 답답함이

졸림보다 더 커서,

귀찮았지만 방에 가서 사전을 뒤적이고

잤을 정도였다.

 

또 이 세상에서 제일 긴 단어가 무엇인지

알게 된 뒤에는 막연한 자신감도 생겼었다.

Pneumonoultramicroscopicsilicovolcanoconiosis (짧게 pneumonia, 즉 ‘규폐증’, 화산재가 폐에 쌓여 생기는 병)라는 단어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 (한호림 저)’에서 처음 보고

굉장히 뿌듯했었다.

지금은 기억도 않나고 잘 쓰지도 않는

신기한 단어들을 보는 것에 쾌감을 느꼈었다.

 

하지만 이런 뿌듯함은

실전적이지 않다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다.

 

막상 외국인을 만나서

이런 단어를 얘기할 일도 없고,

얘기해도 상대방이 모를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원어민들이나 영어고수들은

쉬운 영어로 얘기를 한다.

어려운 단어를 나열한다고

영어를 잘하거나 더 고급영어를

하는 것이 아니다.

 

알파벳을 처음 접한지

1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후에야,

이것을 간신히 깨닫고 틀을 깰 수 있었다.

책에만 머무는 영어를 해온 사람이

빠지기 쉬운 과오이다.

여러분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기를 바란다.

 

영어는 언어이고 실전이다.

실전에서 써먹을 수 있는 영어를 해야 한다.

문법공식 열심히 외우고,

복잡한 문장 전환을 할줄 알고

멋있어 보이는 영어표현과

단어를 많이 외우고 있다고 해도

실전에서 간단한 말조차 만들지 못하면

그건 영어를 할 줄 아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외워서 하거나,

잘해야지 하는, 의도적인 에너지를

별로 쓰지 않고서도 편하게

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 단계까지 가는게 쉽지는 않았다.

게다가 지금은 영어를

활동적으로 쓰지 않은지

15년도 더 넘었다.

 

영어를 쓰던 초반에는,

말을 하려고 하면

머리 속에서 문법검증부터

다 끝난 다음에 얘기를 꺼냈었다.

 

그래도 원어민들은

내 영어의 어색함에 웃기만 하고,

내 자신감은 도망가 버렸었다.

 

영어를 무작정

많이 하기만 하는 것은 위험하다.

어떤 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고급영어냐 아니냐,

반기문 영어가 어떻고 하는 식의

쓸데없는 고민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

 

영어는 오직 실전만 생각하자.

 

(자세한 에피소드는 2장 군대편에서)

 

 

Posted by 제이슨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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