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제이슨팍의 진짜영어 경험담

(4) 고등학교 시절

(5) 재수, 대학 시기

 

 

 

영어만 그만 뒀어도 대학이 바뀌었을 듯.

그 땐 왜 그리 영어에 미쳤었는지.

 

[사진] 전혀 스마트와 거리가 먼, 자리만 차지하던 모범생이었다. (좌측: 고3 졸업, 우측: 고2 생전 처음 삭발 / 현실감 부여를 위한 사진 투척)

 


중학교 때의 내 영어가 설익은 풋사과였다면,

​고등학교 때의 영어는 ​그나마 조금은 더 먹을만큼 익은

빨간 사과라고 할 수 있으려나.

사실 한국 사람들에게 영어는 끝이 없다.

완전체인 순간은 영영 안온다.

다만, 상한선을 어디까지 긋느냐의 문제일지도.

​여하튼 고등학교 때는 중학교 때 보다는 아무래도

​영어의 기본이 더 정리가 된 시기였다.

​사실 고등학교 졸업 때 까지

회화, 스피킹이라는 것을 해본 적은 없다.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을 했고

수업방식은 여러분들이 다 아는 식의,

단어, 문법, 독해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스스로도 그게 전부인 것으로 알고 살았다.

​듣기는 혼자 계속 듣다보면 되는 건줄 알았고,

​영어"회화"라는 것은 그저 다른 나라 얘기였다.

​학교 시험이나 모의고사 속의 듣기 속도, 난이도는 거북이인데 반해

​AFKN에 나오는 뉴스 앵커의 말은 너무 빨라서 눈과 귀에 감지도 안되는 그 무엇이었다.

영어는 ​단지 독해와 단어였다.

​문법은 성문기본영어를 중학교 때 1~2번 보았고,

​고등학교 왔으니 성문종합영어를 보았다.

​당시에는 나름 문법의 바이블이었는데 정말 재미도 없고 도움도 안되는......

그래서 퀄리티와 무관하게 선점효과가 중요한가보다.

​지나고 생각해보면,

이런 책으로 공부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

우리나라 영어를 크게 망쳐놓은 장본인이다.

​더 문제인 것은 아직도 이 책과 별반 다를 바가 없는 책으로

학생들이 가르침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사진] 과거 드라마처럼, 점 하나로 다른 사람이 되는 건 아닌데 말이다. (이미지: SNL코리아)

많은 사람들이 그러겠지만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어른의 세계로 한반 더 나간 것 같은 부담,

​막연하지만 입시의 부담, 학과목 난이도의 대폭 상승 때문에

​1학년 초반에는 정신없이 지나갔었다.

​영어에 대한 것은 문법이 모자라다는 생각을 항상 했었고,

성문종합영어로 어렵고 지겹게 문법을 다졌다.

​성문기본영어도 재미없었지만

그 책들로 인해

영어를 인생에서 제일 재미없게 받아들였던 시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복잡한 수식과 문법용어들에 익숙해지긴 했다.

​여전히 ‘영어순해’를 사야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고,

​드디어! 1학년의 11월 영어순해를 구입하게 되었다.

​영화 ‘스페이스오디세이’의 전반부에서 유인원이 도구를 사용함으로서

드디어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장면의 느낌이랄까.

​당시 어학원에서 대학생~일반인이 보던 책이었으므로 결코 쉽지는 않았다.

​영어에 대해서 더 겸손하게 되면서도

더 영어다운 실력을 갖출 수 있게 되었던 중요한 책이었다.

​이 책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영어가 어땠을까.

(표면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었겠지만, 영어를 받아들이는 데에 있어서 인식의 차이가 조금은 있었을 것 같다.)

​읽기를 잘하고 싶은 사람은,

처음부터 원서를 짚는 것도 좋지만

이 책을 본 후에 원서의 세계로 들어간다면 훨씬 더 편해지는 것을 느낄 것이다.

영어순해.

​중학교 때 까지의 영어에 대한 생각에

완전히 제대로 결정타를 한방 먹게 된 책이었다.

​위에 말했던 것 처럼

그 당시 어학원에서 독해 교재로 명성을 날리던 책이었다.

​학교에서 배운 독해 방법은 뒤로 갔다가 다시 앞으로 가고,

​마지막으로 완전한 한국말로 확인하는 방식이었다.

​당연히 속도가 안 나고 효율적이지 않았다.

​영어의 마인드를 배우는 것은 전혀 기대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영어순해에서는 단순히 독해뿐만이 아닌,

​영어의 감각, 즉 문장을 더 영어식으로 구조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배웠다.

​책의 제목에 ‘순’이 들어가 있듯이

책에서 가장 크게 강조할 수 있는 것이,

​뒤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과정이 없이

그냥 읽는 순서대로 이해를 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Woman in red"라는 표현이 있다고 하면,

​기존의 잘못된 영어 교수법으로는,

'빨간 옷을 입은 여자'이다.

​이를 영어순해식으로 보면

​'여자. 빨간 옷을 입은' 식으로 해석한다.

​혼자 읽고 이해하면 그만이고,

​완전한 우리말로 의역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정말 ‘유레카’같은 경험이었다.

​문법을 처음 익히는 입장에서는

조금 까다로워 보일 수 있는

​관계대명사 that, which 같은 것들이 들어간 문장도

영어순해식으로는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여자, 빨간 옷을 입은... 그런데 그 옷은 어떤 거. 그리고 또 부연설명'

​하는 식으로 덧붙여지는 것으로

이어나가기만 하면 되는 식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지문법에서의 접근법과 겹치는 면이 많다.

그래서 영어 문장을 처음 배우는 입장에서부터

인지문법 방식으로 공부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책이 다소 어렵지만

그렇게 하나 하나 새롭게 배워나가는 재미에

​2번 정도는 보았던 것 같다.

​그렇게 1학년 말에 시작해서 2학년 중에 마무리 했다.

 

2학년 때에는 단어에 대해서도 더 가속을 하게 되었다.

​옆의 전교 1~2등 하는 친구와

사전에서 단어 빨리 찾기 경쟁도 했었다.

​아마 요즘 인터넷이나 전자사전 찾는 것과 비슷한 속도였을지도 모른다.

​눈에 불을 켜고 찾았었다.

​단어의 첫 스펠링 부터 손으로 잡고

그 다음 모음, 자음 순서대로

사전에서의 대강의 위치에 익숙해져 있었다.

​단어를 빨리 찾는다라는 얕은 손기술과 눈기술을 부리는 것이 재밌었다.

​일종의 게임같은...

 


당시에는 특별히 단어장을 정해놓고 보지는 않았는데,

'꼬꼬영'으로 중학교 2학년 때 시작했던 어원공부를

고등학교 2학년 때에 들어와서 비로소 마무리를 짓게 되었다.

​최근 2011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번역본이 나온 책인데,

"Word Power Made Easy (이하 워드파워)"라는 책을 우연하게 알게 되었다.

"꼬꼬영"은 다양한 설명과 그림이 있어서 편하고 재미있게 봤지만

절대적인 양이 많지는 않았었다.

입문용 책이라고 할까.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반면에 ​워드파워는 꼬꼬영보다 어휘 수가 더 많았고

책 전체가 모두 영어로 씌어 있었다.

​독해와 어휘를 한 번에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끈기와 집중력이 약한 나로서는

당시에 처음으로 끝까지 완독한 책이었다.

​고맙게도 이 책과 꼬꼬영을 통해서

보다 더 미국인의 언어, 어휘 마인드에 한 발짝 더 접근하게 되었다.

​당시로는 원서로 된 책을 (400 페이지 이내) 끝까지 다 보았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졌었다.

​그 책을 마무리 한 이후,

​지금까지 거의 20년 동안 특별히 단어장을 보든지

의도적으로 단어를 외우려고 한 것은

잠시 미국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던 중에 보았던

​"Word Smart I+II (포켓판)" 한 권이 전부였다.

 

단어장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이젠 듣기에 관한 경험...​

고등학교 시절의 영어를 얘기하면서

팝송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누구나 그러하듯 감수성이 한참 예민하던 시기.

​당시 All I want for Christmas, Without you 등의 히트곡을 뿜어내면서

미국 팝음악을 이끈 가수 중에

머라이어 캐리를 정말 좋아했었다.

​물론 대부분의 테이프를 다 사서 들었었고,

​어떤 곡들은 아마 100번이 아니라 1,000번이 넘도록 들었을 것이다.

​테이프를 처음 구입했을 때 보다

최소한 10% 이상은 늘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들리는 말은 절대 안들린다.

1,000번을 들어도 안들리는 말이

결국 가사를 한 번 보니까 쉽게 알겠더라.

​이렇게 쉬운 말이 안들렸다니.

​팝송영어 학습법의 한계를 느낀 순간이었다.

​받아쓰기(dictation)도 마찬가지이다.

AFKN을 아무리 들어봐도 안들리는 말은 안들렸다.

​잘 안들리는 것도 계속 듣다보면

언젠가는 귀가 뚫린다고 하지만,

​나 정도로 미친듯이 많이 듣고 나서도 안들린다면

내가 청각장애자이든지

방법론이 잘못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닿게 되었다.

​다행히 난 청력이 일반인 평균보다 조금 더 좋은 정도이다.

 

어떻게든 영어를 정복해보고 싶은 마음에

중고등학교 사이에 팝송으로 영어공부를 하는 교재 전집을 사서

열심히 듣고 공부했었다.

​실전적으로 말을 할 기회가 없어서 확인이 힘든 탓도 있었겠지만

도움이 거의 안되었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도 그 방법이 좋았던 점 2가지는,

​팝송에 나오는 일부 구절이나 표현들을 익히게 된 것과

일부 발음을 좀 더 내보았다는 것이다.

그 외에 전반적인 회화능력이 올랐다거나 하는 것은

이후에 실전 환경에 투입된 이후에도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팝송은 다소 문학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어서인지

표현이 시적으로 되어있거나

실전 환경에서 쓰기 간지러운 표현들이 많았다.

​나중에 실전 환경에서 그런 표현들을 쓸 경우는 없었다.

​영어실력이 오르든 말든 한 때 팝송영어로 강의하시는 분들은

짭짤한 수입을 올리지 않았을지.

 

반면에 학교시험이나 수능 모의고사의 듣기는 비정상적으로 쉬웠다.

​사실 당시의 영어는 책에만 머무는 것이 주로였으므로

듣기의 비중이 낮았고,

​말하기에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도 없었다.

고등학교 내의 ​시험만을 위해서라면 더 이상 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제한된 환경 내에서 영어에 대한 것은 무엇이든 끝까지 가고 싶었다.

​고등학교 2학년 까지는

진흙 속에서 진주를 찾는다는 심정으로 이것 저것 다 해봤었다.

​그렇게 열심히는 했으나

결국 이렇다할 만한 것은 없었고

이후 몇 년간 막연하게 영어를 잘한다 하는 생각으로만 살았었다.

​그 생각도 군대 가서는 무참히 짓밟혔지만.

​한국에서 영어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막상 실력을 올린다고 해도

얼마나 공허하고 우물안 개구리였는지 느낀 곳이 바로 군대였다.

​그 얘기는 ‘군대’ 부분에서 한다.

 

여기까지 해서 영어의 1막을 내린다.

​학교 영어수업이나 보습학원에서는

나에게 영어의 가이드를 제시해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혼자서 장님 코끼리 만지듯이 더듬더듬 짚어간 영어의 길에서

나름 어느 정도는 인풋 영어의 기반을 착실히 다졌었다.

​그 마무리가 워드파워와 영어순해였다.

​내 영어의 스승은 폐품 쓰레기인 셈이다.

고등학교 때 뭔가 많이 한 것 같았는데,

막상 써보니 별 것 없어 보인다.

영어에 대한 사명감으로 살았었고,

오죽했으면 어머니께서,

"이젠 영어좀 그만하고

모자란 과목 공부해라."

라고 하실 정도였다.

그 말에 오히려 난 울먹이면서

어머니를 설득시켜 드리려고 했었고....

완전 미친X이었다.

 

아마 내가 현실감이 더 있었으면

어머니 말씀을 더 귀담아 들어서

다른 인생을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큰 차이가 없었을 수도 있고.

알 수가 없으니 별 후회는 안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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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이슨팍의 진짜영어 경험담

(5)  재수, 대학 시기

 


고등학교 2학년 때 까지의 영어를 뒤로 하고

아마도 짧은 영어공부 역사에서

이 때가 영어를 제일 안했던 때가 아닐까 싶다.

사실 ​고등학교 3학년 때 부터는 영어공부를 안했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대학입시 첫 해를 망치고 재수의 터널로 들어갔었다.

​재수 시절에도 영어공부는 전혀 안했다.

 

재수 끝에 간신히 대학교에 입학했고,

​학과는 생명과학과였다.

​​고등학교 부분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었는데,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1학년 중에 진로를 정하는 시기가 있었다.

​문과냐 이과냐 선택을 해야 하는데,

​집에서 부모님과 상의 끝에 이과로 가는 것으로 정했다.

​문과로 가서 영문학과에 진학한다면

친구들이 모두 나를 인식하는 바대로

자연스럽게 가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쟤는 영어 공부 하는 애’라고 인식이 되어 있었고,

​하루에도 몇 번 씩 친구들이 나에게 영어에 관해

무엇인가를 묻는 것은 당연한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지나고 보면 잘 선택한 일인 것 같다.

​영문학과에 진학했으면 난 영어’만’ 할 줄 아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어는 언제 어디에서든 계속 공부하고

받아들일 주제이기 때문에

영어 말고 추가로 전문분야를 만들어 놔야 겠다고 생각했었다.

​고등학교 시절 물리책의 뒷 부분을 재미있게 공부했었다.

​그 중에 전자기학 부분이 제일 재미있어서 대학도 그 학과로 지원했었다.

​경기권의 모 대학 한 곳만 붙고 나머지는 다 떨어졌다.

​떠밀리다싶이 ‘고3’이 되었었고

멍하게 지나갔던 시기였기 때문에

의식을 가지고 하면 아무리 못해도 고3때 보다는 점수가 잘 나올 것이라는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다.

​재수를 하는 중 어머니께서,

‘미래에는 바이오의 시대가 온다’라는 내용의 신문기사를 보여주셨고

의대에 갈 점수는 안되었기에

목표전공을 생물학(또는 생명과학)으로 정하고

그렇게 대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대학에 와서도 특별히 영어를 공부하지는 않았다.

​영어는 대학 1학년은 누구나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교양수업때만 했었다.

​평생 단 한 번 영어시험을 위해 잠시 공부한 떄이기도 한데,

​카투사 지원을 위해 토익시험을 준비하던 때였다.

​카투사에 대한 가정 일화를 짧게 얘기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것때문에 부모님 두분이서 싸우기 까지 하셨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뉴스에 카투사 관련된 기사가 나왔는데

해병대 장교 출신이신 아버지는,

“남자는 해병대이지.”라고 하셨단다.

​어머니 생각은,

“군대에서 실속있게 뭐라도 기술을 배워서 나와야 한다”였다.

​한참 옥신각신 하다가 어머니의 마지막 말씀,

‘카투사 나오면 영어 하나라도 잘하게 되지 않겠나’에서

토론의 마침표가 찍혔다.

​아버지도 군복무 시절 영어의 필요성을 남달리 느끼셨었기 때문에 바로 수긍하셨다고.

​그렇게 집에서는 이미 고등학교 1학년 때 나의 군입대 문제가 해결되었고,

​나도 영어의 끝을 보고 싶었기 때문에

당시 나처럼 카투사의 존재에 대해 인식하고 있는

친한 친구와 함께 결심을 했다.

​나중에 대학 들어가면 같이 카투사 들어가자라고.

​카투사에 지원하려면

당시에는 대표적으로 토익점수가 필요했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등 크고 작은 모임이 많은 틈에

토익을 위한 준비를 제대로 하지는 못했다.

​대학 입학하자마자 2~3달 동안

등하교 길 지하철 안에서 얇은 토익시험용 책자를

비몽사몽 간에 살짝 훑어본 것이 전부였다.

1학기 중에 토익 시험 점수 받은 것으로 카투사에 지원했다.

​고작 795점.

​그나마 중학교 3학년 때 우연히 구한

토익 문제집 풀었을 때의 점수(585점)보다는 높아진 것이다.

​요즘에는 어린 학생들도 토익 만점자가 많아서

시험에 대해서는 명함도 못내밀 정도이다.

​그 때도 막연하게나마 토익점수가 영어실력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있었고

점수 한 번 나온 것으로 지원했다.

​당시에는 토익 600점이 커트라인이었다.

​같이 지원한 친구는 605점이었는데

정말 운이 좋은 친구인 것 같았다.

​드디어 11월 초에 합격 통지를 받았고,

​그 친구도 합격했다.

​지금은 이렇게 간단하게 쓰지만,

​내 인생에 있어서 지금까지 원하던 대로 그대로 이뤄진 거의 유일한 것인 듯 하다.

​생각해보면 아찔한 것이,

​나중에 합격자 발표 난 후에 보니까

주변에 선배, 동기들 대부분은 지원했었고

대략 10명 남짓했던 그들 모두 탈락했었다.

​​가능성의 문제이긴 하지만

다녀오고 나면 어학연수보다

여러가지로 더 효율성도 좋은 제도이니까

남자들은 한 번 쯤은 응시해 보는 것도 좋겠다.

​어찌됐든,

​카투사는 합격 통지를 받고 나서

그 다음 해에 나이 순서대로 입대를 하기 때문에

1년 정도를 기다려야 했다.

(참고로 요즘은 희망입대 시기를 정해서 지원한다고 한다.)

​입대 전에 회화능력을 키우기 위해

어학원 다니거나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시험점수 제출 후부터 군입대 시기까지 별다른 공부는 안했다.

​매칭 가능성 제로(0)에 수렴하는

소개팅, 미팅만 열심히 하고

마지막으로 군입대 직전 학기를 마치고 나서는

편한 마음으로 아르바이트 하면서 지냈었다.

​"진짜영어"를 만난 것은 입대한 이후였다.

Posted by 제이슨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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