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어지옥_(4) 왜 영문과 나와도 영어 못하나?

 

 

20대 초반의 일이다.

한참 들뜬 마음으로 소개팅 자리에 나갔다.

캬~ 그게 벌써 옛날이다.

그땐 소개팅이 정말 정말 큰 이벤트였다.

 

상대방은 서울의 모대학 영문학과란다.

당시에는 영어에서 완전히 손놓고 있던 때였지만

워낙 영어에 관심도 많고 해서

영어에 대해 뭔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뭔가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조금은 있었다.

그런데 그 기대는 만남과 동시에 무너졌다.

 

“안녕하세요, OOO예요.

OO대 영문학과예요.”


여기까지는 괜찮다.

그런데 그 다음 말이 문제였다.


“그런데 영어는 잘 못하니까

저한테 영어 물어보지 마세요.”

 

농담일 수도 있었겠지만

대강 봐도 영어를 잘할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영어를 많이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심지어 한국말만 써도

영어를 잘하는지 못하는지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영어 소리를 많이 내어보고 들어보면

목소리를 내는 모양이 다소 달라지는 게 있다.

목구멍 근육에 힘이 더 들어간다든지 하는 것들이 있지만

자세한 것은 나중에 얘기하기로 하자.

 

다시 소개팅 얘기로 돌아가서,

영문학과 출신의 상당수가 공감하는 말이겠지만

당시에는 내심 진정 충격적이었다.

 

영문학과 학생이 영어를 못한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영어를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는건가.

 

 

영어를 배우러 나간 자리는 아니었지만

조금 과장해서 내가 우리나라 사람이라는 게 부끄러워질 정도였다.

그럼 학교에서는 무엇을 배운다는 말인가.

앞뒤 선택의 시간적인 순서는 다소 바뀌었을 수도 있지만

내가 영문학과에 진학하지 않은 이유와 연결되기도 한다.

 

소개팅 이후로 1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났다.

위의 소개팅녀의 안타까운 말의 근원을 파헤쳐 봤다.

국내 유명대학의 영문과와 영어교육과의 개설교과목 목록을 알아보았다.

그녀가 영어를 못한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적나라하게 보였다.

우선 아래의 표를 살펴보자.

 

[표] 영문학 관련 학과들 커리큘럼 비교 (각 학교 학과요람 참조): 이러니 영어 못할 수 밖에 없지. 이제서야 알게 됐다.

 

 

목록을 정리한 결과,

국내 대학에서 영문학과를 나와도 영어 못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으로 이해됐다.

반면에 통번역학과의 커리큘럼은 영어를 잘하기에 적합한 것으로 보인다.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들 본인이 직접

인풋 영어의 한계를 넘어선 경험이 있어야

그 방법을 사람들에게 전파해 줄 수 있다.

 

하지만 영어 전공자들이 주로 인풋 과목으로 제한된 커리큘럼만 학습하고,

아웃풋의 경험이 별로 없는 상태에서 강의를 하고,

교육 정책을 세우고, 시험문제를 출제한다.

그 교육의 틀에 속한 학생들은 당연게도 그들에게 강의를 듣는다.

 

결과적으로,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 모두

아웃풋영어, 즉 실전영어를 못하는 '뫼비우스의 띠' 안에서만

계속 맴돌 수 밖에 없다.

 

좀 강하게 얘기하면,

다들 바보놀이 하는 것이다.

 

우리가 오랜 기간 힘들게 영어를 공부했지만

진정 언어로서의 영어는 할 줄 모르는 현실이 된 이유이다.

 

그에 대한 보완책으로

학원에서는 해외파나 원어민 강사를 고용하지만,

그들은 한국의 제한된 환경에서 한계를 넘어본 경험이 없고,

당연하게 잘하게 된 부류이기 때문에

강의의 방향과 방법론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영어강의, 교재의 소비자 입장에서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내용에 다이얼로그(대화 예시)와 문법강의가(수식, 문법용어가 난무한) 핵심강의라면

여러분에게, "어쩌면 영어를 잘할 수도 있겠다"라는

환상만 심어주는 결과가 나오기 쉽다.

 

안타까운 것은,

상당수 학습자들이,

영어는 당연히 원어민에게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

원어민이 필요한 때는

인풋-아웃풋이 어느 정도 숙성된 이후에

스피킹 파트너로서 활용할 시기이다.

(언어를 처음부터 배우는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연습상대 또는 오류 수정자로서 활용)

 

위의 틀을 깨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일방적으로 듣고 읽기만 하는 인풋 영어만 하게 되고,

실전에서는 계속 겁이 날 수 밖에 없다.

반대로 안타깝게도, 경제적 자유도가 높은 부류만 아웃풋 영어를 잘할 수 밖에 없다.

 

다시 말하는데, 여러분이 영어로 말 한마디 못하는 건 당연하다.

회화표현 책에서 한 문장 외워서 간신히 써먹는 것을

‘영어로 말한다’라고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을 것이다.

 

여하지간 여러분은 잘못 없다.

각자 집중력, 암기력, 노력이 부족해서 못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들이 속한 환경이 지극히 왜곡되어 있기 때문이다.

 

답은 분명히 있으니 힘내고,

다음 섹션에서 우리가 인풋 영어를 어떻게 배워왔는지 살펴보자.

Posted by 제이슨팍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