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어지옥_(5) 60년째 한국 영어를 망쳐온 공부법

 

 

“우리나라 사람들은 문법이나 독해는 잘한다.

비록 영어스피킹은 (잘하는지 못하는지) 몰라도"

 
우리나라 사람들 스스로 우리의 영어에 대해 흔히 하는 말이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나름의 위안이 되기는 했지만

실제 상황을 반영하면 아래와 같이 바뀌어야 좀 더 솔직한 평가일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영어스피킹은 못하지만

문법과 독해를 조금은 할 줄 알아서 다행이다.”

 

그나마 조금 한다고 자부하는 독해와 문법도 과연 잘한다고 볼 수 있을까.

독해와 더불어 우리나라 영어가 60년째 변하지 않고

집중적으로 열심히 하는 영역이 바로 문법과 다이얼로그*(회화표현)이다.

 

독해에 있어서 가장 크게 발목을 잡는 것이

“뒤에서 수식” 한다는 문법설명이다.

영어는 중요한 것 또는 의미상 강한 것이 앞에 오고

나머지 설명하는 부분이 뒤에 오는데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문법적인 설명대로라면

뒤에 위치한 접속사나 관계대명사로 연결되는 영어구절이

문장의 앞의 주인공(주어)이나 객체(명사)를

“뒤에서 앞을 수식”한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설명의 순서가 영어스럽지 않다.

 

예를 들어 “빨간 옷을 입은 여인”이라는 말을 생각해보자.

영어에서는 “a woman in red” 또는 “a woman who wears red dress”이다.

왕초보라도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정도의 구절이다.

하지만 이를 우리나라 문법식으로 해석하면,

“빨간 옷을 입은”이라는 말이 먼저 나오고

끝에 주인공인 “여인”이 나온다.

 

이를 인지문법의 관점에서 다시 보면,

“여자”가 있는데, 자세히 보니 “빨간 옷을 입었다.”

즉, “여자” + “빨간 옷을 입은”의 순서로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똑같이 빨간 옷을 입은 여인을,

한쪽에서는 위의 그림에서 1번 입장에서 순서대로 봤고,

다른 입장, 즉 인지문법에서는 2번의 입장에서 본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 내용에 비춰보면

이렇게 해석하는 것을 ‘직독직해’라고 한다.

읽는대로 바로 이해하는 독해 방식이라는 뜻이다.

80-90년대에 한국식 영어에서 문법과 더불어 가장 큰 부분인 "독해"에서 꽤 중요한 화두였다.

 

인지문법의 틀에서 영어 본래의 사고방식대로 문장을 받아들이면

헷갈리는 부분도 더 적어지고

문장을 구조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직독직해라는 말 자체도 필요 없어진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우리나라 영어교육 방식에 의하면,

문법은 문법대로 부자련스러운 해석법에 기반한 방식으로 배우고,

이후에 직독직해 방법을 따로 연습을 해야

영어에 대한 이해력과 반응성이 더 좋아진다.

 

우리나라 교육환경에서는 빨리 깨달았다고 해도

처음 영어를 시작한지 2~3년만에 터득하게 되는 내용이다.

시간 낭비라고 생각되지 않나.

황금같은 중고등학교 시기에는 더욱 더 말이다.

 

처음부터 영어식으로 배우면

나중에 고생을 훨씬 덜 할 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

 

더구나 현재와 같은 문법교육은 문법'성'만 물고 늘어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문장을 만들어 내는 것에는

오히려 방해요인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가 되어진다”와 같은 수동태 방식의 표현과

수동태와 능동태 사이의 전환이 그것이다.

 

실전에서는 그 ‘공식’을 기계적으로 적용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실제 대화상황에서도 문법성에 집중하기 때문에

말이 선뜻 나오지 않게 된다.

이 말이 문법적으로 맞는지 틀린지 속으로 문법검증을 계속 하게 된다.

말이 입 밖으로 나가는 것을 내 몸의 모든 세포와 언어에 대한 기억들이,

바닷가에서 수영하다가 다리에 쥐났을 때 미역이 다리를 감는 것 마냥

몸 안으로 끌어들이기만 한다.

 

문법과 관련하여 내가 대한민국 영어의 피해자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를

군대에서 처절하게 느꼈다.

이는 2장에서 자세히 소개하기로 한다.

 

여하튼 지나치게 분석적이고 추가적으로 직독직해 재교육이 필요한 문법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인지문법 방식의 문법교육이 절실히 필요한 이유이다.

본 섹션에서는 인지문법에 대해 가볍게 짚었고

자세한 설명은 4장의 “영어 끝내기 3단계”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여기에 추가로 회화표현 외우기 방식의 영어가

우리나라 영어를 망쳐놓은 주범 중의 하나이다.

영어를 처음 배우는 사람들이 서점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책 중에

“영어회화 표현 500개” 류의 책들이 다이얼로그 방식의 학습법을 포함한다.

이런 책들을 보면 영어를 잘할 수 있을까?

한 번 살펴보자.

 

1970~80년대 우리나라 산업부흥기에 외국과의 교류가 활발하게 시작되었다.

문법에 대해서는 지금의 교육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지만

영어에 대해서 접할 수 있는 곳은 미군방송(AFKN, AFN), VOA (Voice of America) 등의

일부 라디오 방송과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외국산 영화가 전부였다.

 

당시에 빠른 시간에 원어민들과 말을 틀 수 있는 방법은

단연 다이얼로그에 기반한 영어학습법이었다.

당시 영어에 목마른 사람들에게는 정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침 먹었니?”, “자, 이쪽입니다.” 하는 식의 간단한 표현에서는 빛을 발했고

현재로서도 일부 측면에서 필요하기는 하다.

 

하지만 다이얼로그 영어는 실제적이지 않은,

어색하게 설정된 상황에서의 표현 위주로 보게 되기 때문에

무작위로 예상을 뛰어넘는 말들이 실전에서 오갈 때에는

역할을 잘 못할 확률이 높다.

 

또한 표현에서 배웠던 말들이 같은 맥락 안에서 정리된 것이 아니고

각각 개별적인 대화 덩어리이므로

학습내용 간 연결고리를 형성하기가 힘들다.

 

아무리 공부를 해도 그 투입된 정보들 간에 상호연결성이 없다.

또한 완성된 형태의 문장, 완성된 형태의

대화 덩어리들을 많이 외우는 것 역시

언제 어디서든 편하고 자연스럽게

말을 만들어 쓰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더구나 실전 대화는

외운 표현 한 두마디만 뱉어내고 끝나는 경우는 드물다.

말이 말을 낳고 말꼬리가 꼬이는 등

다이나믹하게 진행된다.

외운 것으로만 해서는 금방 밑천이 드러나고

머리는 과부하가 걸릴 수 밖에 없다.

 

 

중고등학교 시절

영어회화 책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훑어보고

라디오방송도 들으면서 공부했었다.

어차피 학교에서 배우는 영어는

나에게는 더 이상 의미가 없었기 때문에

영어의 끝까지 가보고 싶었다.

(학교나 학원에서 시키는대로 열심히 해도

영어를 잘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더 알려주고자

위의 밑줄 친 말을 썼다.)

 

영어책을 찾던 중 우연히

아버지 책장에 꽂혀있던,

한 때 제일 유명했던 영어회화 책을

중고등학교 때 몇 번 본적이 있었다.

우선 그 방대한 양에 압도되었다.

10권인지 20권인지 기억도 안나는

엄청난 분량의 씨리즈는

당시 영어매니아였던 나를 가볍게 위축시켰다.

 

하지만 동시에,

이 많은 걸 언제 다보나,

이걸 다 외워야 영어좀 한다라고

말할 수 있는건가 하는

절망감이 은연중에 생겼다.

 

원래 암기력과 집중력이 신통치 않았던 나로서는

방대한 다이얼로그들이 다 외워지지도 않았을 뿐더러,

노트필기를 열심히 해놓은 것도

다시 들춰보지 않고

그대로 먼지만 차곡차곡 쌓게 되었다.

 

지금도 사실 영어표현을 외우고 있는 것은 별로 안된다.

그래도 말을 하는 데에는 전혀 부담이 없다.

 

 

그렇다면 다이얼로그 교재가 언제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1) 교재의 내용이 언어생활의 모든 상황을 담고 있어야 하고 (실제적으로 불가능)
(2) 교재의 내용을 그대로 전부 외워야 하고
(2) 실제상황(대화의 흐름)이 교재와 똑같이 발생해야 함

 

어떻게 해야 영어를 잘 하는지를 알려 주는 것이 아니라

외국인들끼리 말하는 상황을 “보여주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건 학습자들의 의지 문제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학습자들이 교재의 내용을 대강 확인만 하고

지나쳐 버리는 식으로 공부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공부를 하기는 했는데

실력은 그대로인 것 같은 안타까운 상태만 반복된다.

70~80년대에는 이런 방식이 충분히 작용을 했다.

일종의 대세라고 해야 할까.

 

대세라는 것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만

대세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짧게 정리하자면,

영어의 근본적인 기초 체력이 키워지면

다이얼로그 훈련이 필요없다.

 

책이나 강의를 찾을 때에도

주의깊게 살펴보길 바란다.

다이얼로그 영어는 초급-중급자에게는

그다지 도움이 안되는 방식이다.

 

문법, 다이얼로그에 이어서

독해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보자.

 

수업시간에 보통 선생님이 칠판에 문장을 쓰고 학생들이 해석을 한다. 즉 독해수업은 문법을 잘 알고 있는가에 대한 수업이 된다. 수업시간에 직독직해로 해석을 하면 선생님이 어색해 한다. 경험담이다. 불편하더라도 굳이 의역을 해야 한다. 사실상 단락에서 핵심문장이나 핵심어를 찾거나 빠른 읽기를 하는 것은 배우지 않는다. 문학적으로 가치있는 문장과 작품에 대해 배우는 경우는 기대하기 힘들다. 있다고 해도 선생님의 개인적인 의지에 의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학교나 학원에서 배우는 독해는 오직 문제풀이만을 위한 독해라는 것이다. 그런 내용에서 중요 부분을 찾는 기술적인 공부를 하게 되므로 독해의 실전적인 효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영어문장의 아름다움이나 표현의 정교성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기술에 한정되어 있고 아웃풋으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한국 영어의 본질이 비어버리는 느낌이다. 우리나라에서 독해를 배우고 문단과 글에 제대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Easy Read) 영어순해”(김영로 저)를 추천한다. 현재의 독해강의는 대부분 김영로 선생님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야말로 독해의 바이블이라고 할만 하다. 물론 초급자에게는 내용이 다소 어려울 수 있으므로 문법에 대한 이해가 충분했을 때 접근하길 바란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영어교육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현재 교육의 틀에서 문법과 독해를 잘하면

영어를 잘하는 것일까?

60년 째 변하지 않는

위와 같이 문법, 독해, 다이얼로그 등

인풋 위주의 커리큘럼으로 영어에 접근하면

영어열등감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다음 섹션에서는

위의 것들을 계속 했을 때에

우리가 나아갈 수 있는 정도

또는 그의 한계를 확인해 본다.

Posted by 제이슨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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